타락, 그리고 선과 악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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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478회 25-10-31 00:46본문
타락, 그리고 선과 악의 경계.
>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고 그를 은삼십에 팔아 스스로 타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천사들은 과연 무엇을 위하여 주 여호와를 배신하고 타락했던 것일까? 유다는 고작 은삼십에 자신의 영혼을 판다. 그러나 지금의 이 시대를 본다면 어쩌면 이는 참으로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마저 든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을 위하여 일하고 자신의 영혼마저 팔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비싼값을 받지 못하는 것에만 문제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마치 저 가룟유다처럼 말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타락했던 것일까? 그들의 은삼십은 과연 무엇이었겠는가 말이다. 천사들의 문명에 있어서도 분명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만든 그 무언가가 존재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것은 교만이나 살인, 또는 거짓말과 같은 그런 악의 개념이 아닐까 한다.
> 사도 요한의 예언서에 의하면 붉은용의 머리는 일곱개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단은 일종의 칠두룡이었단 말인가? 이 일곱머리를 해석하여 추려보자면 그 첫번째로는 단연코 교만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거만, 세번째 살인, 네번째는 거짓이라고 본다. 이 네가지는 의외로 매우 쉽게 유추할수 있는 것들이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언급한 멸망의 이유인 교만과 거만, 이는 바로 사단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본다. 예수께서 친히 겸손의 왕으로 오시지 않았는가? 또한 그는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였으니 '교만과 거만'은 분명 이에 대한 반대개념인 것이다.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라 한다. 그러므로 살인과 거짓도 그의 속성의 한부분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세가지는 무엇이 될까? 남은 하나는 가장 간교한 짐승이었던 옛뱀에서 보여준 간교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형제들을 송사하던 자가 하늘에서 쫓겨났다 하였으니, 분명 이 송사도 그의 속성인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단 하나만이 남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의 마지막 일곱번째 머리는 바로 타락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 사단을 주관하는 일곱개의 개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붉은용의 일곱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열개의 뿔들이 있다고도 한다. 이 열뿔은 열왕을 말하며 그의 친위대격인 타천사 열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또한 그들이 열왕이라 하였으니 아마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던 그룹의 장들이라고 본다. 이들과 그들에게 속한 엄청난 수의 천사들이 모두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한다. 왜일까? 그들은 왜 그렇게 타락해야만 했던 것일까? 아니, 도대체 이 타락이란 과연 무슨 뜻이란 말인가? 단순히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단편에 섰기에 배신자가 되고 타락자가 된다는 그런 말인가?
> 타락의 반대개념은 승천이다. 왜냐하면 타락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승천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죽음은 타락과도 매우 비슷해 보인다. 예수께서는 죄없는 의인이었지만 죽음을 통하여 저 음부로 내려가시게 된다. 이는 그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를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다. 왜냐하면 사실은 그가 죄인이 아니라 진정한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게 된다. 이는 천년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한다는 그런 이야기와는 완전 다른 것이라 할수 있다. 어쩌면 사단은 저 이무기처럼 그렇게 다시 승천하기를 간절히 바랬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타락이란 그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린다는 것은 진정한 선에서 돌아선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자신의 악에 사로잡힌다는 그런 의미가 되는 것이다.
>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자였다.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야요 그리스도시며 다윗의 위를 잇는 참된 왕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곁에서 충성스런 그런 신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는 다르게도 예수님의 말씀은 점점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어느날 마리아라는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붓게 된다. 이를 본 유다는 참을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분노를 쏟아내었다.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옥합을 그냥 헛되히 낭비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히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위한 그런 장례의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인을 오히려 칭찬하셨으며, 이후로도 많은 이들에게 이 여인의 믿음을 널리 알리겠다고 하신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이 여인이 자신보다 더욱 믿음이 있다? 어쩌면 유다는 여자라는 존재 자체를 남자보다 하위적 존재라 그리 단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주체할수 없는 실망감과 화를 참을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대제사장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수를 팔겠다고 그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삼십을 약속받고 돌아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 타락이란 믿음에 나아가던 이가 배신하는 행위를 말한다.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넘어서 아예 돌아서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절망에 삼켜지고 악에 이끌리며 죄에 빠져 헤매이는 것이다. 결국엔 그 타락의 끝에서 영원한 형벌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타락자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악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마저 결국 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버려 둔다면 마치 누룩처럼 온덩이에 퍼져 저 멸망의 끝에 이르게 하는 그런 악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이란 승천을 의미한다. 그리고 악이란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승천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서는 것, 지치지 않고 영원히 나아가는 것, 그리고 변화하며 성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선을 추구하며 포기하지 않는 것, 단지 현재상태의 좋고나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라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런 방향성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 길에서 포기하고 절망하며 돌아서는 것, 그리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 또한 자신이 만든 거짓된 천국에 그냥 그렇게 머무는 것, 이런 것들은 결국 그저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들에 불과하다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타락속에 숨겨진 진정한 선과 악의 그 경계라 할수 있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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