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의 언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4,926회 18-07-16 20:17본문
영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기도하리라
> 데메이스 크로스메인 더펄 웨인더스 마이컨 잇이스더마이컨 웨나이 더 스마인 케스멀론... 이것은 내가 하는 방언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방언을 할 때면 내 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때가 많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영적인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소리들을 듣게 되기도 한다. 처음 방언을 하게 되었을 때엔 매우 심각한 혼란에 빠졌었다. 왜냐하면 언어라기보단 약간 말장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불을 덮어쓰고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고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실험을 하듯이 방언을 해보기도 했었다.
> 성경엔 방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는 은사로서의 방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올바른 방언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은사로서의 방언이란 성령의 인침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영적으로 어린 자들은 대부분 이 방언을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 방언은 어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적인 은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모두 방언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은사로서의 방언은 영의 언어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가 하는 방언은 은사로서의 방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말을 조합하는 감각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면 방언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방언을 할 때는 보통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영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옛 자아를 십자가에서 못박았다면 당연히 삶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예수를 주로 하는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 새롭게 태어나는 자아가 방언이라는 은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는 말이다.
>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고 흩어짐을 면하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니므롯을 특이한 사냥꾼이라 하신다. 사냥꾼은 보통 동물을 잡아야 하는데 이 특이한 사냥꾼은 사람을 사냥했기 때문이다. 말로써 말이다. 이 특이한 사냥꾼인 니므롯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곤란해 하셨다. 때문에 할 수 없이 대규모 패치를 감행하신다. 이것이 바로 언어 패치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단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하셨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세상은 예수라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예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 예수로 말미암아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진 날에 바벨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는 언어의 혼잡이 오히려 복음의 전파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여러 지역의 방언을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허락하신다. 수 많은 방언들이 터져나왔고 그곳에 모인 많은 이들이 이를 보고 놀랐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각기 다른 방언으로 듣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아마도 언어팩을 소규모로 각각의 개인에게 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첫번째 바벨 때와는 많이 다른 양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영의 언어가 되는 은사로서의 방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영의 언어가 되는 이 방언은 도대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 내가 처음 방언을 하게 되었을 때에 많이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이 방언이 성경적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조잡하고 더러운 귀신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여러 타종교의 영접술에 해당하는 어떤 행위를 할 때에 대부분 방언과 같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이 방언과 매우 흡사하여 오히려 내가 귀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에 의거하여 꾸준히 방언을 했을 때에는 결과가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내 자신이 말을 조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는 영적인 존재로써 성장을 하면 할수록 이 방언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영이란 기본적으로 생각의 집합체이므로 성장할수록 표현력의 강도와 다양성이 방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소리에 담기는 뜻과 의지가 분명해졌고 언어로써의 발음은 더욱 정확하고 선명해져 갔다. 이로써 나는 내가 하는 방언과 저들이 하는 방언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방언을 단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의 언어로써의 방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 방언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믿음과는 상관 없이 모든 이들이 방언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관찰로 알게 되었다. 다만 영의 언어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단순한 말장난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접술에 기인하는 방언은 접신의 방식으로 언어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귀신이 몸을 빌어 말한다는 것이다.
> 영적인 세상은 사실 매우 복잡하다. 사단이 존재하고 그에게 속한 군세인 귀신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다. 다만 세상 모두에게 자신을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인 것이다. 영의 언어인 방언을 시작하게 되면 이 영적인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적인 세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린 자가 방언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일단은 말로 기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영적인 존재로서 각성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