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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교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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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6,169회 15-08-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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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교회는...
 > 이 시대의 교회는 과연 하나님께 인정받는 예수님의 교회라 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예수님을 노래하고 예수님을 가르치면 그들이 과연 예수님의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같은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는다면 자신의 교회로 인정하지 않으시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반석은 그 터가 되는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베드로라는 이 기준이 매우 높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터가 되는 사도나 선지자가 최소한 베드로 정도는 되어야 예수님의 교회로써
 인정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아멘!
 
> "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  반석이라는 기준은 부르심을 받은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이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훈련을 마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불러 세우심으로 선지자나 사도가 되게 하신다. 그리고 어떤 역할을 위해 보내신다. 보통 반석이라는 터가 되게 하시는데 이 때 하시는 말씀이 양을 치라 하시고 또 양을 먹이라 하시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대의 삯꾼들은 이 말 뜻을 상당히 궁금해 할 것이다. 첫번째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는 것은 중보자의 역할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린 자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까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때문에 이들은 반드시 중보자를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어떤 중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보자의 역할은 더 이상의 도움 없이 직접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 두번째 양을 치라 함은 비판함으로써 형제의 죄를 일깨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던 것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서로의 발을 씻겨주라 하셨던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길을 안내 표시도 없이 무작정 달려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이 섬김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보고 올바른 비판을 해주는 것이 이 섬김의 핵심이요, 발을 씻기는 진정한 모습이라 하겠다. 아무에게나 비판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개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있겠는가? 이 비판이 아무리 값진 진주와 같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자가 개나 돼지와 같다면 오히려 상해하려 달려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주와도 같은 비판은 섬김으로 형제에게 행하는 것이며 더러워진 자신의 발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교회

 
> 마지막으로 양을 먹이라 하심은 선지자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결코 자신의 성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서 양을 먹이라 하는 것은 어린 양을 먹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충실히 좁은 길을 따라가고 있는 양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 양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다. 표면적인 성경의 수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가야만 하며 더 나아가 이면적인 숨겨진 성경의 이야기들을 풀어가야만 한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 이 시대의 교회에는 베드로 정도의 중보자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때문에 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최소한의 터가 되는 선지자나 사도가 없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다 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행위는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중보자가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은 알면서도 모래 위에 집을 지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그들은 노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예수님의 교회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그 집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당면한 진짜 문제인 것이다.
 
>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그 교회와 그 터가 되는 사자에게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베드로를 뛰어넘는 중보자인 에베소 교회의 사자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를 책망하시고 저로 하여금 이를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그에게서 교회를 옮기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는 생명나무의 실과에 대한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하신 것이라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이 생명나무 실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 예수님의 교회로 인정받는 일이 어쩌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이 시대의 교회가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 너무나 쉽게 천국을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짓 선지자들은 귀신을 쫓아낸다 한다. 그리고 선지자 노릇한다 한다. 그리고 병을 고친다 한다. 거짓 선지자들의 문제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다만 하나님의 보냄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보냄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참으로 재밌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는 것이다. 성경은 마치 봉한 책의 말과 같다. 허락 받지 못한 자는 그 의미조차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을텐데 그들은 성경을 말한다. 그리고 가르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을 투영한 성경은 자신을 볼 뿐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가르치심이 없다면 성경은 그냥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바울의 편지로 보일 뿐인 것이다.
 
> 거짓 선지자들은 양을 치라 하신 말씀을 읽으면 정말 양들을 때린다. 그리고 괴롭히기도 한다. 먹이라 하신 말씀을 읽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그들을 가르치려 한다. 그들의 스승이 되려 하며 부모가 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잡아먹는 늑대에 불과할 뿐이다.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 한다. 결국엔 왕처럼 다스리려 하며 양들을 노예처럼 지배하려 한다. 반면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좁은 문으로 인도하는 자와 같다. 예수라는 이 좁은 문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결코 지나갈 수 없는 비밀과도 같다. 이 비밀을 아는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돕겠는가? 보냄을 받은 자는 자신이 누구에게 보냄을 받았는지를 정확히 안다. 아무에게나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먹음직스런 살찐 양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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