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그 첫번째 이야기 ( 시작은 미약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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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9,507회 13-03-06 01:58본문
욥 그 첫번째 이야기 "시작은 미약하나..."
> 이제 한단계 더 나아가 성경에 나오는 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를 통해 여러가지 개념들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깊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발판을 삼기를 바란다.
욥기서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된 성경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누가 기록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책이다.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저자는 매우 높은 지성과 놀라운 영성을 가진 자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욥기서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따라 가다보면 분명히 그 베일들이 하나씩 벗겨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 모든 이야기에는 악당이 있듯이 여기에도 악당이 있다. 바로 사단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욥을 친다. 그는 정말 아프게 하는 법을 잘 아는 것 같다. 첫째 그는 한 날에 모든 소유를 빼앗는다. 자녀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몸을 쳐서 괴롭게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말이다. 욥의 겉옷은 찢겨있으며 머리는 대머리가 되어 있다. 그리고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가득하다. 욥은 재 가운데 앉아 그 손에는 기와 조각을 들고 온 몸을 긁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본 그의 아내가 하는 말이 '그래도 순전을 지킵니까? 그냥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세요.' 한다. 본래 이 여자는 그런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고 그렇게 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욥의 이야기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시작된다. 정리하자면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이다. 욥의 지식은 매우 생소한 것들이 많다. 날을 저주하는 자에 대한 것이라든지 부지 중에 낙태한 아이에 대한 것이라든지 말이다. 그러나 욥의 말은 신뢰성이 매우 높으므로 연구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욥의 곤고함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칠일 칠야를 함께하며 슬퍼한 친구들이 세명 있다. 그 중에 하나인 엘리바스가 말을 시작한다.
> 엘리바스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무척 두려워 했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엔 이런 일이 존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욥이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가 아는 욥은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그 행위는 완전함에 이른 자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고 연구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가지 체험을 하게 된다. 한 영을 보고 그 영이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
그리고 엘리바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 욥이 잘못한 것이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으니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어찌 사람이 하나님보다 의롭겠는가? 결국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권한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가 분명하니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이다.
> 그러나 욥은 이를 듣고 친구들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된다. 욥이 생일을 저주했던 것은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심지어 피곤하여 전능자 경외하는 일마저 폐했다고도 한다. 욥이 엘리바스가 하는 말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가 가장 먼저 기도하고 생각한 것이 바로 그 일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이미 지쳐버린 욥의 그 허망한 말을 단지 책망하고 나선다. 엘리바스에게 나타난 영은 아마도 그 사단이 맞을 것이다. 진정한 악당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욥이 순전함을 지키니 이제는 친구들마저 동원해서 욥을 흔들고자 한 것이다.
> 이에 빌닷이 나서서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면 네 자녀에게 죄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 하나님의 심판이 그 공의가 잘못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엔 이치라는 것이 있으니 네가 돌이켜 다시 선을 행하면 처음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해질 것이라 한다. 이 대사는 참으로 유명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욥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말이었다. 이치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 선을 행하면 복을 얻고 악을 행하면 재앙이 임한다는 것이다. 욥에게 무언가 잘못된 일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내리신 것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이켜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또한 복을 허락하실 것이라 하는 것이다.
> 듣기엔 매우 옳은 소리 같지만 여기엔 커다란 문제가 있다. 욥은 그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욥을 자랑하시며 세상엔 이같은 자가 없다고 하실 정도였다. 그런데도 욥은 자신의 죄를 찾고 있으며 혹시라도 깨닫지 못한 죄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빌닷이 말하는 이치라는 것은 이론 상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데 어찌 악이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 욥에게 그 재앙을 허락하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무리 사단에게 격동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악이란 말인가? 아니면 사단에게 휘둘릴 정도로 어리석은 존재란 말인가? 아닐 것이다.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서 매우 복잡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 사람들은 마치 빌닷처럼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매우 잘 안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아가며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선입견은 참으로 위험하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머리 속으로 그리는 것은 마치 바알신을 섬기는 것과 같다. 새긴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설 때에는 머리 속에서 생각해낸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과 모른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은 사실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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