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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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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7,994회 09-11-28 14:50

본문

 >의 시간을 이해하려는 그 동안의 노력은 좋은 결실을 얻은 듯하다. 이 시간은 우선 빛의 시간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그렇게 시작된다. 세상의 과학은 빛의 속도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 빛의 속도를 따라잡으면 언젠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시간은 그저 개념일뿐 실제 존재하는 그런 현상이 될 수 없다. 저들은 빛의 속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빛의 파동에 대해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 빛의 파동은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또한 물질들은 이 빛의 파동을 따라 그렇게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빛이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파동이 중요한 것이다. 이 파동의 중심엔 일종의 정보가 있다. 소스의 정보가 이 파동을 통해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정보의 소통으로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파동의 진행이 그 시간의 흐름을 만들게 됨으로, 빛의 시간이란 그저 일종의 기록물처럼 그렇게 작용한다고 본다.
 
> 쉽게말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은 물리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빛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영상물에 가깝다는 말이다. 우리의 꿈의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빛의 파동을 따라 흐르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의 의식을 따라 그렇게 자유롭게 반응하고 또한 적용되는 것이다. 때문에 꿈의 제작자가 실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상을 통해 보는 세계도 이와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그렇게 제작된다고 본다. 
 
> 빛의 시간이든 어둠의 시간이든 모두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주기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간이란 일종의 인지세계를 그 토대로 하는 것이라 본다.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모두 그저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주기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인지함으로써 보는 것이며 인지함으로써 듣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적어도 인식의 주체인 자기 자신에게는 말이다.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수의 이름이요, 또 하나는 새로운 자신의 이름이다. 이 모든 것에 간섭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 분은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얻을 때에 두번째 보혜사로서 오셔서 우리의 강팍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심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신다. 또한 우리가 어린 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에 장성한 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허락하신다. 이 때에 얻게 되는 것이 자신의 새로운 자아이며 진정한 자아가 된다.
 

모든것이 담겨있는 하나님의 시간

 
> 이런 이야기는 하나님의 시간을 모르는 자에게 있어 마치 봉인된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듣는 모든 것을 흘려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저 담아 둘 그릇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 잡아둘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자만이 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의 일곱째 날에 이루었으며, 그 날은 하나님의 제 칠일에 속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에 속한 제 칠일은 하나님의 인식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좁은 길을 그렇게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식함으로써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한다. 또한 인식함으로써 그곳에서 변화하고 또한 성장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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