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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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8,039회 10-01-15 07:59본문
> 성경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는 많은 슬픔을 보게 된다. 다윗의 슬픔을 본다. 또한 요셉의 슬픔, 그리고 베드로의 대성 통곡함을, 나는 성경을 통해 많은 슬픔의 진정한 모습을 알려했었다. 참으로 많이도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더욱 민감해져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비유들을 통해 둔한 마음을 버리고 더욱 주님의 마음을 느끼는 자가 되기 위해 기도했었다. 비유들을 통해 어떻게하면 둔한 자가 되지 않고 깨어있는 자가 될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비유들을 통해 어떻게 예민해지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는듯 하다. 비유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 예측했었건만 그 결과들이 이루어졌어도 어찌 이루어지는 것인지 관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성령의 가르치심이 각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일을 이루시는지는 아마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작정 말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을 느끼려고 해야 한다. 쉬운 예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여!' 라든지 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느끼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삭의 경우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여 라고 했을 것이다. 엘리사의 경우엔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에 계시오니까?' 한다.
> 나의 경우엔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여' 한다. 예수께서 그의 이름을 내게 주신고로 그 이름을 힘입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주'라는 말을 시작으로해서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었다. 내가 인지하는 하나님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주의 영으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라 고백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하나님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일은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 시작이라 하겠다.
> 또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 느껴지는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릎을 꿇는다든지, 고개를 숙인다든지, 눈을 감는다든지, 이런 예를 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로써 간주될 수 있기에 매우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그리 쉽지않은 선택이 될 때가 많다. 기도의 때를 놓치게 된다랄까? 그러므로 기도는 상황에 따라 예를 표하는 방식이 유동적이 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단지 시선을 멀리 둔다든지 살짝 눈을 감는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 그러고 나면 이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일만이 남게 된다. 엄밀히 말해 기도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위해 나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아이들은 보통 부모의 말을 듣고 자란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게 된다. 이처럼 주의 말씀을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답하고 있는 자신을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슬픔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주께서 이런 슬픔을 내게 알게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사랑이 아프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어쩌면 슬픔이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가 아프고 또 아팠기 때문에 성장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이것이 지금 나의 기도이다.
" 주님! 내게 보여주신 일들은 내게 너무 슬픈 일들입니다. 내가 그것들을 볼 때에 주께서 내가 슬퍼하고 또 더욱 슬퍼하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더욱 그리했었죠. 그 슬픔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겠죠? 이제 하나님의 긍휼이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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