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아들이라. ( 세번째 성령의 인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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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4,359회 19-08-09 00:28본문
너는 내 아들이라.
세번째 성령의 인침
>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대한 개념처럼 아들에 대한 개념 또한 깨달아 알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육체를 따라 이어진 이 관계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잇는 자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손이라고 말이다.
또한 단순히 혈연으로 이어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냥 요단 강가에 버려진 흔한 돌들과도 같다고도 한다.
> 그러나 많은 이들이 육체를 따라 이루어진 이런 혈연 관계를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일까? 왜 이들은 실체도 없는 이런 허울뿐인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은 말하기를 부모나 형제나 자식마저도 모두 버리고 이 믿음의 길을 걸으라고 가르친다. 또한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에 가졌던 모든 관계들은 실질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옛 자아의 죽음으로써 말이다.
> 때문에 오히려 이들에게 진짜 의미있는 관계는 하나님이요, 천사들이나 같은 믿음의 길을 걷는 형제와 자매들이 될 뿐이다. 그러나 거짓된 복음을 들은 어떤 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 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형제나 부모를 전도해야만 하며 그들의 자녀에게도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강요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노략질하는 이리일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참된 믿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에 바탕을 둔 것이며 충분히 성장하여 하나님의 보냄을 받기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 하나님께서는 열매에 대해 말씀하신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코 그의 자녀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열매만이 그 나무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사실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아닌 것이다. 오직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만 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겠는가? 아들의 영을 따라 다시 태어나는 자들은 그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어떤 배움이 존재한다. 아버지께 듣고 배웠기에 그를 본받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인침은 숨겨지고 뒤틀려지며 왜곡되어 전해질 뿐이다. 왜냐하면 사단이 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방해하고자 한다.
> 칼빈은 단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단의 의도대로 끌려다녔으며 결국은 사단의 종이 되어 사단이 원하는대로 이상한 교회법을 세우게 된다. 그는 성경을 이해하려 했으며 성경의 의도대로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는 성령의 가르치심이 있어야할 그 자리에 자신만의 교리를 세우게 된다. 과연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단 말인가?
> 어쩌면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 그러했을까? 과연 끝까지 아무런 의심조차 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자기를 불러서 이끄는 존재가 사단일거라고 과연 누가 의심을 하겠는가? 그러나 대제라 불리웠던 콘스탄틴은 아마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을 이끄는 존재가 사단이였음을 말이다. 그리고 칼빈 또한 어찌 이를 몰랐겠는가? 아마도 순간 순간 이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웠을 것이다.
> 수 많은 이들이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아무도 공허를 이기지 못하며 성령의 인침을 받지 못한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이를 이상히 여기지는 않는다. 왜일까? 왜 그들은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것이며 왜 애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냥 먹고 배부른 까닭이 아닐까?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육체의 소욕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성령의 인침은 결코 이런 자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침은 예수께서 피로써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참된 증표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성령의 인침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또한 이를 통해 영적인 존재로의 각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로써 두번째 자아는 다시 태어나게 되며 천사들과 같은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처음부터 그리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나약한 존재이며 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존재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신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이 사실은 이 모든 사건을 푸는 진정한 열쇠와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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