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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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4,307회 19-09-29 06:46본문
의심하는 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한다.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믿음에 관하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고 물으신다.
과연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믿음이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 무엇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리고 들리지 않는 소릴 어떻게 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을 통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하며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때문에 그들의 숨겨진 진실을 보려면 매우 신중해져야만 한다.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깨어만 있다면 언젠가 그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크게 외쳐 거짓말을 하면 다른 이들도 그 거짓말을 함께 외치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들에게 진실이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과연 진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정말 진실 따위는 몰라도 되는 것일까? 사단은 분명 존재한다. 그는 무언가를 계획했으며 또 무언가를 실행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현실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 사단은 과학이라는 세상을 열었다. 과학은 진리를 알기 위해 엄청난 실험을 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며 냉철한 논리를 통해 실체적 증명을 하려 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다르게 이 과학은 학문도 아니요, 그렇다고 마법이나 주술 또한 아니다. 이 과학은 믿음이라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정교한 사단의 속임수에 불과할 뿐이다. 사단은 과학을 통해 무한한 우주를 말한다. 그리고 그 속을 빠르게 유영하는 작고 작은 지구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땅이 단단히 고정된 것이라 말한다. 결코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 성경이 이를 말했기 때문에 그저 믿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증거 때문에 이를 믿는 것이다. 나에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증거가 있다. 이 세상이 엄청난 거짓아래 놓여 있다는 증거가 있다. 내가 아는 증거에 의하면 지구는 둥글지 않으며 회전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하늘의 별들은 단지 조명들이며 해와 달도 자신만의 빛을 내는 조명들인 것이다. 그리고 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무겁거나 가벼울 뿐이다. 우주란 누군가의 상상일뿐 이 세상은 돔아래 닫혀진 세상이며 돔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다. 이 빛은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을 진동케 한다. 나머지 반물질의 세상은 어두움이라 칭해지며 또한 밤의 세상이라 불리운다. 빛의 진동은 시간의 흐름을 지배한다. 빛이 앞으로 나아가며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마치 가상 현실처럼 말이다. 나는 증거를 통해 세상을 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 존재하는 세상을 보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이 먼저 있었고 그리고 그 결과는 따라오게 된다.
>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보든지 결국은 하나님의 생각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창조자시니 결국은 하나님의 생각이 그 모든 것에 담겨 있지 않겠는가? 사단은 정교한 거짓말을 내어 진실을 숨기려 한다. 그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유로든 그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멈출지라도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 믿음이라는 또다른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진짜로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된다. 거짓으로 가득차있는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천사들을 보게 되며 그의 잃어버린 어린 양들도 보게 된다. 그러나 믿음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의심하지 않는 것에 있다.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알게 된 진실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장면을 보고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수께서 허락하시면 자신 또한 물 위를 걸을 수 있으리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가 물 위를 걸음으로써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 그러나 그 믿음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곧 두려움에 삼켜지게 되었다. 베드로는 분명 자신 또한 물 위를 걷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그 의심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었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믿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지라도 그 의심마저 완전히 뿌리치지 못할 때가 많다. 예수의 이름으로 산다는 말은 옛 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임을 우리는 분명히 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삶의 주도권을 놓지 못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가 알게 하시는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는 오직 믿음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며 들을 수 있는 실체적 세상인 것이다. 오히려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꿈과 같을 것이며 귀로 듣는 세상은 그 존재마저 부정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 무엇으로 이 현실과 꿈을 분별한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의심하는 자는 흔들리는 자일뿐이며 증거가 없어 앞을 보지 못하는 그저 그런 소경일 뿐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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