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_img3.png



살렘왕 멜기세덱 0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489회 24-12-06 17:54

본문

살렘왕 멜기세덱 02

 
  
 
 > 경은 영으로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성경을 읽는 자들은 매우 곤란해하곤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속에 담겨있는 진짜 의미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사실상 그 누구도 이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소리내어 그 글자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속에 숨겨져있는 진정한 비밀들은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깨닫지도 못한다. 때문에 성경은 마치 봉인된 책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성경의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칠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신다. 그런데 네째날이 이르러서야 비로소 태양과 달을 만드신 것이다. 이를 읽을 수 있는가? 일단 그냥 대충 그렇다치고 넘어가보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만드사 그곳을 다스리게 하신다. 그런데 갑자기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만약 선악과를 먹게되면 정녕 죽게될 것이라 하시면서 이를 금하시게 된다.
 
> 그러더니 갑자기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는 뱀이 출현하더니 하와를 꼬드겨 선악과를 먹게 한다. 그리고 하와는 아무말없이 선악과를 따서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한다. 잘보면 성경은 그 읽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매우 높은 지성을 가진 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천지창조라는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그런 지성이 있다면 첫째날에 만들어진 저 빛이 실제로 무엇인지 아마도 그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또한 선악을 아는 일에 상당한 수준의 이해가 있다면 선악과의 실체를 단번에 파악해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자들은 보통 그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현인류는 사실 그 정도의 지성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기록되어진 성경을 해석하려면 하나님에 버금가는 그런 수준의 지성을 반드시 소유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믿음을 전제로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성경은 말한다.
 
> 일단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보들을 그냥 믿으라 하신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시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이 믿음이 현실부정적이고 맹목적으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믿음에 근거하여 기도를 하면 정말로 오랜 지병이 낫게되고 압제하던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생각의 힘이 병든 마음을 고치고 병든 육체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덧 깨닫게 되는 것이다.
 
 
 
 
 
> 령의 감동이란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나타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종의 공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확히는 '공명현상'으로 설명되어진다. 성령의 감동이 우리의 생각을 일깨운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게 되면 우리는 분명 영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영으로 기록된 성경을 읽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자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성경의 진정한 기록자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이다.
 
>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간파하기 위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만 한다. 왜 노아가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고 멜기세덱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해야만 했는지, 또한 왜 떡과 포도주를 들고 저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나아가야만 했는지,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이를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할때에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인지,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이며, 또한 그 믿음이 왜 그토록 필요했던 것인지, 우리는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 성경을 알기 위해서는 그저 글자를 읽는 것만으론 사실 충분하지 않다. 성경은 영으로 기록된 것이니 영의 눈으로 보고 영의 귀로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노아는 살렘왕이라 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하여 네피림을 통한 왕권을 이룰때에 그는 끝까지 이를 반대하던 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까지 그들과 같은 왕이 되는 것을 혐오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살렘왕이란 이름을 가지고 아브라함 앞에 나아오게 된다? 사실은 그는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 나님의 시간을 따라 바로 이곳을 방문한다. 이 장소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단은 함의 아들 가나안을 통해 또다시 세상을 멸망에 이르도록 하는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이라는 어떤 개념을 세우고자 하신다. 이 믿음은 첫번째 퍼즐이다. 이 믿음이라는 놀라운 개념을 풀어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이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오셨을때에 비로소 풀어지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 마귀의 후손이라 하신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계보를 잇지 못했던 그들을 단숨에 부정해 버리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는 것에 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판단보다 더욱 신뢰하라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하신다. 만약 아브라함이었더라면 이 말씀을 듣고 믿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진리를 말한 예수를 오히려 미워했고 그를 죽이고자 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그런 상위적인 정보들을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첫번째 퍼즐이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없다면 변화와 성장도 없는 것이다. 사단의 간교함에 빠져 또다시 타락하게 될뿐 그 어떤 미래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첫번째 퍼즐인 이 믿음은 상위적인 정보들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사단의 시험도 반드시 이겨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인치심을 받더라도 다시 타락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그 위험을 감수하라고 그렇게 유혹한다. 그러나 절대로 이를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감각과 판단보다는 기록된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을, 마치 방패처럼 그렇게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조금 어리석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