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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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82회 25-02-20 15:31본문
불의한 청지기
"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
> 이는 불의한 청지기로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다. 그러나 잘보면 이는 비유라기보다는 어떤 논제에 가깝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어떤 논제를 던지신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일을 듣고 그냥 비웃는다. 그들은 무엇을 비웃었던 것일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이 말씀을 비웃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비웃는단 말인가? 무슨 불의의 재물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 이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차라리 친구를 사귀라 하신다. 이 청지기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인은 이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하였으므로 오히려 칭찬을 하게 된다. 그는 분명 옳지 않은 그런 청지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지금 칭찬을 듣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청지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지기는 자신의 불의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생각한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래서 그는 주인의 소유로 빛진 자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게 된다. 이왕에 주인의 재물을 더욱 많이 허비해 버리고 만 것이다. 어차피 짤릴 거 사람들에게 은혜나 베풀자 한 것이다. 후일 그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주인은 이를 알고는 오히려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게 된다. 보통은 더욱 심히 노하였을텐데 이 주인은 사뭇 반응이 달랐던 것이다.
> 심지어 예수께서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욱 지혜롭다고 하신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의 무엇이 지혜롭다는 말인가? 주인의 소유를 더욱 허비한 것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얻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것 말인가?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고 할만한 지혜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부자인 주인은 그를 지혜롭다고 칭찬한다. 심지어 예수께서도 빛의 아들들보다 더욱 지혜롭다고 하시지 아니한가 말이다.
> 불의의 재물은 사실 저 바리새인들에게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로서 그들은 재물을 탐하고 그 부를 축적해온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불의의 재물을 내놓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듣고 그냥 비웃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불의한 재물일지라도 충성을 다한다면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 논제는 이러하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두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길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한다. 그러므로 이 불의한 청지기는 바리새인이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불의한 청지기는 하나님의 소유를 멋대로 허비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의 작은 이권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은 일에 불의한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들통나게 되었고, 주인에게 버려질 위기에 처해지게 된다.
> 위기에 처한 청지기는 그저 자신의 후일을 대비하기 위해 한가지 묘수를 떠올리게 된다. 청지기의 직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사정과는 상관없이 그는 오히려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을 다하는 그런 자로 비춰지게 된다. 사실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잔꾀와도 같은 그의 묘수를 엄청 대단한 지혜처럼 그렇게 칭찬하시게 된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지혜가 맞는 것일까? 어쩌면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도무지 이해가 안가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믿어보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자면 이는 정말 대단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첫번째 가능성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기에 자신은 무로 돌아가지만, 은혜를 입은 친구로 인하여 영원한 처소로 초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가능성은 비록 불의한 재물에 충성을 다했지만 이로 인하여 주인의 인정을 받아 참된 것으로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맡으면 그때에는 충성하리라 한다.
> 그러나 그것은 그저 핑게에 불과하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재물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의한 재물일지라도 충성을 다한다면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큰 지혜를 듣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돈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이다.
>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거지였던 나사로가 죽음에서 돌아와 저희에게 말한다 하더라도 저희가 그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는 모세와 선지자에게 듣지 아니한다면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듣지 아니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아니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불의한 청지기와도 같다. 어쩌면 세상이 그러하여 그들도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다면 그 친구들로 갚음을 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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