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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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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11회 25-03-2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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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 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 라지는 무엇일까? 예수께서는 가라지가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 하신다. 그리고 그 악한 자는 원수라 하시며, 또한 마귀라고도 하신다. 세상끝에는 타락한 천사인 사단이 많은 이들을 속여 종삼게 될 것이다.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엔 가라지로 그렇게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열매맺지 못한 가라지처럼 그렇게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쫓겨나 심판을 받게 될 때에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이다. 왜 저들은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일까? 무슨 배신이라도 당했단 말인가?
 
> 저들은 그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며, 모든 넘어지게 하는 그런 암적인 존재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억울하단 말인가?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정말로 억울한 것일지도 모른다. 울며 이를 갈 정도로 말이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나오는 염소에 해당하는 자들도 그 반응은 사뭇 비슷하다. 그리고 버림을 당하게 된 저 유대인들도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커다란 흐름에서 결국은 배제되어 버린다. 또한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셨던 성령도 받지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관한 그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실은 뼈아픈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울며 이를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분명 약속의 자녀들이었는데, 천국의 백성들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유대인들은 버림을 당하게 되었고, 반면 개처럼 여겨지던 이방인들은 천국백성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예수를 믿는 모든 이들이 죄사함을 받게 되었고, 천국백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약속의 성령을 얻게 된 것이다.
 
>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욱 섬기는 그런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있어 그 누구보다 열심이 있었고, 또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그런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바울의 말에 의거하면 커다란 문제가 있다. 죄의 소원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육체의 연약함을 틈타서 죄가 오히려 왕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죄에 빠지게 되고, 또한 그 죄를 위해 끝없는 제사를 반복해야만 한다.
 
>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들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억눌러 이길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되며, 영의 소욕을 따라 칭의가 아닌 진정한 의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돈의 중요성을 예수님이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치 저 가룟 유다처럼 말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주의에 빠진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단정해 버리고 만다. 
 
 
 
 
> 상끝에는 가라지가 자라나게 된다. 분명 예수께서는 좋은 씨를 뿌렸지만 원수인 사단도 함께 그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추수때가 이르자 가라지들은 뽑혀져 영원한 불에 살라지게 된다. 그런데 잘보면 이 가라지들도 울며 이를 가는 것이다. 왜일까? 이들은 분명 전에 그 바리새인들도 아닌데 말이다. 예수께서 세우신 새로운 교회는 분명 죄사함과 성령의 거듭남으로 그렇게 시작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 그런데 정작 세상끝에 이르자 바리새인들과 같은 가라지들이 또다시 생겨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단이 그 이면에 있어 악한 생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같은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돈을 사랑하는 자들 말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교회가 온전히 설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그의 제자들도 결국엔 핍박을 받게 되고, 이단으로 몰리게 되고, 또한 그렇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 결국엔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그렇게 전파되겠지만, 그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천국복음이 온전히 증거될 것을 바라보신다. 이천년동안 수없이 많은 교회들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교회의 터가 되는 베드로와 같은 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영적인 여정을 통해 예수를 만나고 그의 증인이 된 바울과도 같은 이도 말이다. 수많은 교회들과 그 교회를 이끄는 종들은 언젠가 참된 진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저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 어쩌면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믿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자신은 소경이 아니라고, 귀머거리가 아니라고, 그저 현실적으로 돈을 무시하지는 못했노라고 그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자신은 다르다고, 자신은 성경적이었다고, 자신은 헌신적이었다고, 사실은 그럴 의도는 없었노라고 그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답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오답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틀린 것이라 해야만 한다. 저들은 그저 깨닫지 못했을 뿐인 것이다. 
 
> 다름을 인정하라? 아니! 틀림을 인정해야만 한다. 비유와 그 해석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꿈과 그 해석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상과 그 이상에 담겨있는 진짜 진실을 풀어 내야만 하며,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고, 그 비밀들을 풀어내어 해석하는 그런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신 저 집주인처럼 말이다. 비유를 들으나 깨닫지 못하고, 그 마음이 둔하여 알지 못하니 어찌 이에서 돌이켜 고침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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