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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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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350회 26-02-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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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 데교회의 사자에게 예수께서는 회개를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그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던 것일까? 그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신다. 또한 뭔가를 일깨워야 하는것 같은데 참으로 알기가 어렵다. 잘보면 일곱영과 일곱별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들 모두에게 그 직분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너는 사실 죽은 자로구나, 또한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하신다. 사실 그에게는 행위에 문제가 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하시지 않는가? 그의 행동패턴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말, 이것이 바로 그의 문제이다. 그는 분명 예수를 말하지만 그의 가르침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애매모호하다고 할까? 양식으로써의 가치가 전혀 없다랄까? 생명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님의 요구이다. 일단 회개하고 무언가를 일깨우라는데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고 하신다. 굳게하라? 그런데 그 남은 바 죽게된 것은 살아있긴 한 것일까? 무슨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그런 상황처럼 보인다. 사데교회의 사자에게는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명이 그에게 있다고 하신다. 그러면 나머지 다른 이들은 그 옷을 더럽혔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도 하신다. 이들은 흰옷을 받게 되는데 이는 분명 예수님의 피로 씻어 깨끗케 한 그 옷일 것이다. 사데교회에 있어 몇몇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순전을 지킨 것이다. 욥과 같이 말이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어떤 흰옷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사데교회의 사자는 삯꾼과도 같다. 열정으로 시작하여 모든 일에 그 충성을 다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삯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삯을 약속받았고 그 삯을 위하여 일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천국의 보상을 위하여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든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는데 그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알수가 없다. 어쩔때는 나름 잘 이끌어가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갈증을 본다. 그들의 굶주림을 보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만으론 어찌 할수 없는 그런 영적인 문제와도 같다.
 
>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에게 회개하라 하신다. 그리고 무언가를 일깨우라고도 하신다. 잘 생각해보자. 여기서 말하는 회개란 잘못을 빌라는 그런 뜻이 아니다. 회개라는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야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깨움이란 그곳에서 죽어버린 사상인 천국복음의 원리를 다시 깨우치라는 그런 말인 것이다. 예수안에 있는 참된 생명의 비밀을 제대로 깨달으라는 말이다. 힘들겠지만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라는 그런 뜻이다. 남은 바 그 죽게된 것을 다시 살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이긴다면 그도 흰 옷을 입게 될 것이며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아 당당히 주앞에 서게되는 것이다. 예수라는 피묻은 그 옷을 입고 말이다. 또한 생명책에 기록되며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당당하게 그를 인정해 주시겠다고도 하신다.
 
> 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에 대한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듯 하다. 어떻게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란 말인가?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그 기준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일까? 우리 눈엔 그저 움직이면 산 자요,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자인데 말이다. 그런데 저 좀비들은 죽은 자인가? 아니면 산 자인가? 좀비들에게도 삶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이요, 산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말속에 생명이 있다고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시지 않는가? 또한 영생은 무언가를 아는 것이라고도 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생명의 기준은 아는 것이 아닐까? 조금 생각을 달리해 보자. 사데교회의 사자는 무언가를 아는 척했지만 사실은 몰랐다. 그에게서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은 영적인 깨달음 그 자체를 볼수 없었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그저 움직인다는 것이 그 전부일수 없다. 삶의 가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더높은 의식의 단계로 그렇게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배우며 예수를 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 자란 생명의 비밀을 아는 자와도 같다.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빛을 발견하고 그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지 않는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다는 말이겠는가? 단순히 성찬에 참여한다는 그런 말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깨달음을 얻어 양식처럼 말씀을 소화하는 것이며, 성령의 감동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명이란 삶의 가치에서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하시지 않는가?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하신 것이다. 그는 세상을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시고 그 피를 흘리셨던 것이다. 예수를 믿는가? 아니, 그의 말을 믿는가 말이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그저 알지 못하는 자와도 같을 것이다. 그저 성찬을 기념하며 예수를 기린다고 산 자가 되겠는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그저 죽은 자와도 같을 뿐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일깨우라! 생명의 비밀을 깨달을지니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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