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청함을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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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긍휼 댓글 0건 조회 7회 26-02-15 22:28본문
천국은 마치 (청함을 받은 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권세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 이 말씀들은 두 아들에 대한 비유, 포도원의 비유에 이어 이윽고 이 혼인 잔치에 대한 비유까지 말씀하시게 된다. 그런데 이 비유.. 그들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맞을까?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우선 이 비유를 해석해보자면 이러하다. 임금은 곧 하나님이시고 혼인 잔치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세상 끝 날이 아닐까 한다. 또한 먼저 청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핍박한 어리석은 바리새인들, 거짓선지자들일 것이며, 죽임당한 보내신 종들은 곧 여태껏 보내왔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일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임금에 의해 진멸 당하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는 앞선 포도원의 비유와 완전히 일치한다 보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던 말인가? 단순히 강조의 의미였던 것일까?
허나 이 비유는 이에 끝나지 않고 더 이어지게 된다. 진멸 당한 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청함의 기회가 더 넓어지게 된다. 청함을 받은 자들의 기준은 낮아지고 또한 넓어진다. 그런데 초대받았다고 다가 아니다. 그중에 또 택함을 입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 혼인 잔치에 초청받았음에도 예복도 갖추지 않고 들어온 이 자는 결국 임금에게 딱 걸리고 만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속으로는 당황하여 변명도 못 한 것인지 아니면 불만을 가진 것일지 알 수 없지만 결론은 밖에 내어던짐을 당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그리 급하게 사람을 모았는데 예복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바는 임금이 보기에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대답조차 않는 것은 억울하든 말든 쫒겨나기에 합당한 처사였다는 뜻이다. 택함을 입은 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혹시 택함이라는 것이 예복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서 입었다는 표현을 쓴 것인가?이 혼인 잔치의 정체도 불분명하다. 이는 그저 마지막 심판 날을 뜻하는 게 아니었던가?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다 하신다. 그러나 애초에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한들 혼인 잔치에 그저 길에서 만난다면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무작정 초대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이는 그럼에도 반드시 혼인 잔치가 거행되어야 하며 합당한 사람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일단 누구든 청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 혼인 잔치가 대체 무엇이길래?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혼인 잔치는 후에 요한계시록에도 저술된다.
이는 사실 비유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는 분명한 예언이었다. 혼인 잔치가 정말 열린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신랑이고 신부는 두 증인이며 이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 혼인 잔치는 무언가 지대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 문명의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니 말이다. 결혼의 의미, 완성 그리고 잔치라 하였으니 이를 기쁘게 여기시는 하나님과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세상.. 그런 것 말이다.
비유는 그저 이해를 돕는 이야기일 뿐 실체가 없으나 예언은 실제 사건을 투영한다. 혹은 직접적으로 대놓고 말한다.
이는 저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향한 비유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시간속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될 모두, 바로 우리들을 향한 예언이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를 알아들은 이는 그 자리에 없었던 듯하다.
바리새인들 또한 그저 아무 반응 없이 다시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 상론하러 갈 뿐이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혼인 잔치에 필요한 저 예복은 과연 무엇일까? 어린 양이 입고 있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일까? 혹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게 된 큰 환난에서 나온 열방의 무리들이 입고 있을 어린양의 피로 깨끗게 한 그 희게 한 그 옷일까. 확실한 건 예복을 갖추지 못하든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든 청함 받았다고 그저 통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쎄 과연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 날 우리에겐 무엇이 요구될까?
역시 열매가 아니겠는가. 무화과나무의 맺힌 열매와 같은 믿음의 열매 말이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말씀하신 목적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갖춰야 할 예복의 실체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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