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첫번째 더 큰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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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516회 26-04-29 15:52본문
십자가
첫번째 더 큰 심판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
>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시간이 걸렸었던 것 같다. 이 생각이 깨어지기까지 말이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사실은 알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그러나 나는 분명 그가 바울일 것이라고 그렇게 확신했었던 것 같다. 바울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전까진 말이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욕심과는 다른 선한 원함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욕심과 바램이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했으니 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확신하게 해주는 그런 증거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아브라함을 대하면서 나는 크게 흔들릴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세우려 하시는 그의 믿음은 이와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 또한 예수께서는 믿음에 대해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다. 그가 말하는 이 믿음이란 아브라함의 믿음을
정확히 관통한다. 아브라함은 내게 이러하지 않았느니라. 그는 믿음이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신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더라도, 그저 신뢰함으로써 그렇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여기엔 반드시 증인이나 증거가 포함되어야만 한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증거한다. 또한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그를 증거하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친히 설명도 해주시며 그 본을 보여주기도 하신다. 또한 물 위를 걸으셨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으키셨으며,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이 믿음이란 어린아이처럼 그냥 그렇게 그 증거를 받아들이라는 말인 것이다.
> 그런데 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믿음을 다르게 말하는 것일까? 단순한 실수라기엔 저자의 의도가 너무나도 분명하지 않은가? 히브리서를 자세히 보면 그는 예수께서 사실 천사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그의 맏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할뿐, 또하나의 주장은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좆는 대제사장이라 한다. 그리고 하늘에 성소의 원형이 있고, 예수께서는 그곳으로 들어가 자기 피로 하나님께 더큰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는 꽤 그럴듯해 보이는, 하지만 정말 이상한 그런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자체를 뒤흔드는 그런 행위에 가깝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놋뱀이라는 저주의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그냥 흩어버리려 하는 것인가? 더큰 제사라는 그런 논리를 내세워 말이다.
> 말엔 책임이 따를수 밖에 없다. 심판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변명해야 하며 더큰 심판으로 그렇게 이어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말에 더욱 주의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그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께서 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야만 하는 말을 하고있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반드시 실수가 뒤따를수 밖에 없다고 본다.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일인 것이다. 아무런 해석조차 내어놓지 못하는 자가 과연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느냐마는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말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더큰 심판으로 이어지는,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사람은 반석과도 같아야 한다. 다른 이들의 터가 되어주는 그런 이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보내신 이인 예수님의 뜻에 어찌 반하겠는가 말이다.
> 그러므로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일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누군가의 증거를 그저 믿고 받아들이는 그런 행위이니 말이다. 여기에 증거가 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그 증거이며,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이 또한 증거이다. 믿음은 신뢰에서 나온다. 누구를 믿을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알듯이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존재를 알수 있다고 하신다. 바리새인들은 말은 그럴싸했지만 그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회칠한 무덤과도 같아 밟는 사람이 이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써 그들을 알리라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신뢰할지 그것을 먼저 결정해야만 한다. 세상을 신뢰할지 아니면 예수님을 신뢰할지 말이다. 믿음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아니라, 누구의 증거를 믿을지에 관해서인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가? 그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가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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