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세번째 천사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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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7회 26-08-14 17:4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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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천사의 타락
> 차갑거나 더웁거나 해야한다. 지성은 더욱 차갑게, 감성은 더욱 뜨겁게 말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따라 조금더 깊이 들여다 보자. 가인은 절망했다.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함을 인하여, 그리고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것을 인하여 말이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해하지는 않을까? 가인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이 실제로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인은 많은 이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표를 제시한다. 하나님이 주신 그 표 말이다. 표를 내밀자 그들은 아무말없이 그냥 물러났다고 한다. 왜일까? 어떤 표이길래 위기의 순간에 죽음마저 면케하는 것일까?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는 그런 경고의 패였을까? 아니면 몸에 무슨 문신 같은게 나타나서 빛이라도 났던 것일까? 땅의 저주가 뒤따르는 존재, 그의 곁엔 항상 저주의 흔적이 함께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툼의 원인이 되기엔 아마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한 표를 주신다. 죽음을 면케하는 그런 표 말이다.
> 시작점에 '하나님의 표'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마지막에도 분명 그런 표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표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으셨을까? 죽음을 면케하는 표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죽음을 속인 적이 있었다. 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어린양의 피가 죽음을 면케하는 표가 된다니 말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벗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를 알려주지 않으셨던 것일까? 심지어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게 하더냐 하기까지 하신다. 그러더니 막상 에덴에서 그를 쫓아내실 때에는 아예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기도 하신다. 마음에 걸리셨던 것일까? 그런데 가죽옷이라니 도대체 이 옷은 또 어디서 구하셨단 말인가? 양이라도 직접 잡으셨던 것일까? 잘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벌주려 하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보호하려 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다. 저 생명나무실과의 진짜 진실로부터 말이다. 어쩌면 그 가죽옷도 사실은 하나님의 표가 아니었을까? 가인에게는 죽음을 면케하는 표를, 그리고 아담에게는 그 벗었음을 가리우는 가죽옷을 지어주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큰 환란에서 나오는 커다란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피로 그 옷을 씻어 깨끗케 한 자들라 한다. 또한 예수님의 혼인잔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적다고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한 어떤 자에게 물으신다. '예복은?' 그런데 그는 유구무언이다. 그는 청함을 받았으나 결국엔 쫓겨나고야 만다. 예복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유구무언이 문제였을까? 어쩌면 둘다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인해 그의 피는 죽음을 면케하는 표가 된다. 그리고 예수의 피로 씻어 그 옷을 입으면 이는 마치 예복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인은 하나님께 표를 받았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이 표를 제시하면 놀랍게도 죽음을 피할수 있는 것이다. 가인은 비록 죄인이었지만 그렇게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숨에는 목숨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죽음을 면케하는 표를 주신다. 왜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것일까?
> 여섯번째 인이 떼어질때 하늘은 종이축이 말리는 것처럼 떠나가게 되고 달은 붉게 물들고 해는 총담같이 검어질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사천의 종들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뒤따른다. 그들은 첫열매라 한다. 예수님께서 뿌리고 간 천국의 아들들이 드디어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천사들은 검증하는 자가 되어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친다고 한다. 이 인은 하나님의 표가 아닐까? 도무지 연관되어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랄까? 그런데 셋이 태어나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은 가인과 아벨이 있었을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제사를 드렸다는 그런 말이었을까? 아니면 예배라도 드렸다는 말이었을까? 홍수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어떤 신비한 무리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뭇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칭해지게 된다고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저들은 세상의 소금과도 같은 존재들임을 알수 있다. 착한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그런 세상의 빛이였다는 말이다.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 이는 그들의 착한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금의 그 짠맛 말이다.
>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은 첫번째 하나님의 아들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쉽게말해 예수님의 교회에 가인과 아벨이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가인이 타락한다.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쉽게 놓아주지 않으신다. 첫번째 제자여서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아담의 경우처럼 가인에게도 사단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죄인이 되는 것은 어쩌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짜 시작은 그 죄인이 되는 것에서부터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사단의 행적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자니 말이다. 사단은 왜 인류를 그토록 미워하는 것일까? 그에게 있어 우리는 어쩌면 저 아벨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 말은 어쩌면 가인이 아니라 사단의 숨겨진 그의 진짜 생각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천사들의 형제요, 그 아우가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다. 그리고 땅은 혼돈했으며 공허했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가지더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다 한다. 날카로운 지성을 따라 생각해보자. 이게 무슨 상황이겠는가? 하나님의 첫째날이 시작되기도 전에 뭐가 많이 있다. 땅이 이미 있지 않은가? 비록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또한 잘보면 깊음이라는 곳이 이미 존재했음을 알수 있다. 이 깊음 위에 땅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도 존재한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할 정도면 물은 이미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칠일 천지창조의 준비가 그렇게 모두 끝난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그 첫째날이 시작된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생겨난다. 이 빛이란 무엇일까? 천지창조의 첫째날에 과연 무엇을 만들어야 하겠는가 말이다.
> 천사들은 태초라는 시간전에 이미 그 문명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사람이라는 문명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신 것이다. 왜일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다. 그러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한다. 사람이 산영이 되었다는 것인데, 쉽게말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신을 불어넣으신 것이다. 그렇게 아담은 천사들과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된다. 이는 마치 인류가 철로 로봇을 만들고 인간을 닮은 AI를 탑재했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형제라 하며 그 형제를 보호하고 사랑하라 하신다. 사단은 타락한다.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도 이에 반기를 들었고 사단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사람이 아니라 저 천사들을 말하는게 아닐까? 자기 지위를 떠난 이들은 저 천사들이 아닌가 말이다. 천사들의 문명에는 이미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류라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존재들이니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거야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참된 생명의 길로, 의의 길로, 그리고 진리를 알기 바라시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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