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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네번째 십자가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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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66회 26-05-1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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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네번째 십자가 안에는

 

 
  
"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 
 
 
 > 브라함은 86세에 이스마엘을, 그리고 99세에 할례를 행한다. 그는 백세가 되는 다음해에 이삭을 낳게 된다. 2(아르박삿)+35(셀라)+30(에벨)+34(벨렉)+30(르우)+32(스룩)+30(나홀)+29(데라)+70(아브라함) = 총 292년이다. 대략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나게 되니, 그러면 총 367년, 노아가 홍수 후 350년에 죽었으니 아브라함이 대략 60세즈음에 노아가 죽은 것이라 할수 있다. 노아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셈을 축복한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의 곁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브라함이 과연 믿음의 사람이 될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저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다. 그리고 이때 즈음에 노아가 죽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는가? 물론 그는 당시 950세나 되었으니 그의 죽음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우던 이들의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 홍수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네피림을 낳은 그 주체이기도 하다. 네피림, 곧 거인이 무엇이냐? 성경은 친절하게도 그 네피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거인은 전쟁무기였다. 용사라 하며 고대에 유명하다 하지 않는가? 네피림은 전쟁을 위해 그들이 낳은 최종병기였던 것이다.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그런 실험을 한 것인지 그것을 알수는 없다. 다만 당시에 거인들이 있었고 그 거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았다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전쟁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지배하는 세상, 그들은 세상의 왕이 되었고 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타락이었으며 영의 길을 포기하고 육체가 되어버린 하나님의 아들들의 어리석음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끝까지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남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 노아는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고 멜기세덱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살렘왕이라 한다. 전쟁을 일으킨 하나님의 아들들 때문이었을까?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 저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그는 마치 예수님처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며 아브라함을 축복한다. 노아는 예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저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이 세워지기를 그렇게 기대했던 것이다. 과연 믿음이 무엇이었기에 그는 그렇게 기대했던 것일까? 한낱 아브라함이 믿음을 이룬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설득당했을지도 모른다. 이해해 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그런 하나님의 논리에 그는 그렇게 현혹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리고 나도 그러하다. 그렇게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놀라운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나의 모든 의문들이 그곳에서 그렇게 풀어지게 되는 것이다. 죄사함이란 무엇일까? 아니, 죄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 죄의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흙으로 우리의 심장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않는가?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아는가? 심장은 엔진과도 같다. 우리는 이미 엔진을 만들 기술이 있지 않는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알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미 그 기술이 우리 손안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더욱 깊은 곳에 있다고 한다. 생명나무실과나 선악과를 통해 손쉽게 지식을 얻고 그 생명을 얻을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문제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나무실과를 먹어도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 하나님은 아시지만 우리는 모른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믿음이란 신뢰함으로써 배우고 성장하는 좋은 예라 할수 있다. 그저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통하여 상위적인 정보들을 가져올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또한 믿음이란 열매를 통해 그들을 분별하는 그런 능력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누구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를 판단할수 있다는 것이다. 사단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예수님처럼 저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는 척을 할수는 있어도 겟세마네 사건은 어떠한가? 사기를 치는 행위는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 결국엔 숨겨진 목적을 드러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엔 그럴듯하게 말하겠지만 결국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겠는가? 그 민낯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다.
 
> 십자가 안에는 모든 해답이 존재한다. 진리를 알고 싶은가? 예수 안에 진리가 있다. 예수 안에는 참 생명이 있다. 십자가 안에는 우리가 고민하고 알고 싶어하는 모든 진실의 그 해답이 있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다. 마치 지평선처럼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게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시간의 지평선과도 같다. 이는 시간의 끝이요,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은 바로 이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고 또한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만약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 영적여정을 떠날수 있는 것이다.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이해하겠는가? 육으로 난 것은 옛자아이며, 성령으로 난 것은 새로운 영적자아이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 이해하겠는가? 옛자아는 십자가에서 그렇게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만 예수 안에서 영적존재로 다시 태어날수 있다. 십자가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새겨지는 그런 놀라운 기적과도 같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생명처럼 그렇게 싹트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을 누군가에게 또다시 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렇게 핍박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죽음이 아니다. 생명인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믿기 바란다. 이것이 참된 진실이니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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