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다섯번째 땅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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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27회 26-08-28 16:1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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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땅의 저주
>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한다. 태초의 땅은 저 깊음위에 세워진다. 그런데 그 깊음이라는 곳에 샘들이 있었다? 그리고 저 하늘의 궁창에도 창들이 달려있는 것이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져 오른다. 그리고 저 하늘의 창들도 모두 열려버린 것이다. 이것이 정말 대홍수라고 보는가? 이 세상은 어쩌면 작은 어항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궁창이라는 작은 어항 말이다.
> 잘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는 물과 물을 나뉘게 하리라 하신다. 저 궁창을 통해 말이다. 그렇다면 궁창은 물 속에 만들어진 커다란 거품과도 같지 않을까? 깊음의 샘들은 저 밖과 연결되어진 일종의 수로인 셈이고 말이다. 또한 별들은 궁창에 매달려 있으며, 해와 달도 그 궁창 안에서 그렇게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저 하늘에 오를 자 누구란 말인가? 우주선을 타고 달에 오르며 저 광대한 우주를 직접 항해하는가? 그러나 어떻게 말인가? 어떻게 그 추진력을 얻는단 말인가? 공기도 없는데 말이다.
> 첫번째 세상은 그렇게 거의 이천년만에 그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번엔 노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 멸망의 이유말이다.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성적으로 타락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날카로운 지성으로 파고 들어보자. 영이란 무엇이며 육이란 무엇일까? 영이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고 해보자. 그리고 육이란 거짓과 술수요, 악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영을 좇던 그들이 악에 이끌려 타락했다는 그런 의미가 될 것이다. 악의 생각은 네피림이다. 거인의 힘을 이용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절대적인 무력으로 세상의 왕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사단에게 절하는 것과 다를것이 없다고 본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한다. 악에 빠진 자들은 그저 육체의 소욕에 이끌려 그렇게 타락한 것이 아니다. 욕구는 그저 작은 미끼에 불과할 뿐, 진짜 문제는 그 악의에 있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손짓한다. 달콤한 욕구로 유혹하며 미끼를 던져 낚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들을 취하여 네피림을 낳으라고 말이다. 분명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성령을 배신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랐다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단이 존재한다. 그의 악한 의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악의가 참으로 사단의 것이기만 하겠는가? 저는 마귀니라. 가룟유다는 어느순간 마귀가 되어 버린다. 그도 사단처럼 악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오십 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
>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 그는 방주에 오른다. 그리고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오는 것이다. 칠일만에 방주는 닫혔고 하늘에서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겨우 사십일동안 비가 온다고 온세상이 그렇게 물에 잠기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물에 잠겼고 큰 산들도 잠겼으며 가장 높은 산마저 그렇게 모두 물에 잠기게 된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그 차올랐던 물들은 왔던 곳으로 다시 물러가게 된다. 그렇게 일백오십일이 지나자 방주는 아라랏산에 내리게 된다. 이때가 칠월 십칠일이다. 그리고 시월 일일에 다른 산들의 봉우리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사십일 후에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었고 까마귀를 내어놓는다. 일년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다. 그리고 이월 이십칠일에 그 땅이 마른 것이다.
>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땅을 저주해봐야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땅의 저주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제약을 거시려는듯 하다. 심음과 거둠, 참으로 귀찮다. 추위와 더위, 너무나도 힘들다. 그런데 여름과 겨울, 그리고 낮과 밤, 이건 또 뭔가? 원래부터 있는 것 아니었나? 쉬지 않는 계절의 변화라니, 낮과 밤이 쉬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원래는 여름과 겨울이 없었다는 말인가? 낮과 밤도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말이다. 태양은 낮을 주관하고 달과 별들은 밤을 주관한다고 한다. 어쩌면 그때는 그리 불편한 밤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 일단 땅의 저주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번째 세상에서는 땅의 저주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라멕은 노아를 낳고 이런 이상한 말을 한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우리가 수고로이 일한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는 무언가를 알았던 것일까? 땅의 저주라니 일단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땅의 저주인 것이다. 왜 종신토록 일해야만 할까? 왜 땀을 흘리며 수고로이 일해야만 할까? 이는 저주로 인해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사람으로 인하여 이 땅을 저주하신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는 단지 선악과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선악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두려움이 생겨났고 악이 자라났다. 사람은 선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악에 빠지게 된 것이다. 죄의 소원이 우리 안에 있으며 결국 죄의 종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땅은 그저 휘말린 것에 불과하다. 사람의 마음과 땅은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선악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속엔 죄의 소원이라는 어떤 균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저주는 땅을 통해 그렇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말이다.
> 하나님께서는 땅을 저주하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땅이 사람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된 것일 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거의 한계가 없는 그들의 타락으로 인해 세상의 끝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의 심판이라는 강수를 두신다. 어쩌면 너무나도 화가나서 이 세상을 그냥 쓸어버리시는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물의 심판조차 어쩌면 구원의 표일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하신다. 땅과의 링크를 해제하신 것일까? 그러나 이것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하셨는지 일종의 제약을 거신다. 그것이 바로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 그리고 낮과 밤이 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종의 저주의 흔적을 남기신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마음속에 저주가 존재함을 알게 하시기 위해, 죄의 소원이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말이다.
> 선악과엔 일종의 저주가 심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그런 저주 말이다. 죄의 종이 되게하는 그런 저주 말이다. 그러나 분명 그 열매속엔 선악을 알게하는 그런 순기능도 있었을 것이다. 벗었음을 알게하는 지혜의 열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신의 열매, 그러나 그 이면엔 사단이 심어둔 추악한 악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든 열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처음부터 죄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될 그런 운명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살과 피를 내어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옛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예수안에서 죽게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를 주로 인정하며 그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지 않는가? 거듭남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자아는 성령으로 난 영의 자아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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