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세상 끝에는... | 세번째 열처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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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36회 20-05-22 05:05본문
감람나무 3권 예언의 말씀
세상 끝에는...
세번째 열처녀 비유
>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때문에 반드시 이를 예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밭에 있어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이 둘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또한 두 여자가 똑같이 매를 갈고 있어도 그 결과는 전혀 다를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깨어있으라 그렇게 경고하신다. 그리고 비유까지 더하여 이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신 것이다. 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
> 첫번째로 열처녀에 대한 비유이다. 그 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있다고 한다. 미련한 다섯은 등을 준비했지만 그 기름은 준비하지 않는다. 등불은 '등과 기름' 이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설마! 그럴리가? 그러나 그들이 미련하다 하지 않는가? 왜 미련하다 하겠는가? 놀랍게도 그 등만을 들고 나간 것은 사실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간단한 등불의 원리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밭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중 하나는 이런 미련한 자일 것이다. 또한 매를 갈고 있는 두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도 역시 이런 미련한 자인 것이다.
> 미련한 다섯처녀들은 결국 청함은 받았어도 그 혼인잔치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해서? 신랑이 늦게오는 바람에? 아니면 기름을 나눠주지 않은 그 매정한 것들 때문에? 아니다, 그들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저 그들의 미련함 때문인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믿는다. 구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자에서 그렇게 죽으셔야만 했는지 아는가?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인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좁은문은 무엇이며 또 좁은길은 무엇인지 아는가? 그저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고, 또 따라하는 그들을 따라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들은 결코 깨어있는 자가 될수 없다. 슬기있는 자만이 생각하고 의문을 가져 비로소 깨어있는 자가 될수 있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깨어 있으라.' 하셨고, 이를 알게 하기위해 이 비유를 더하신다. 열처녀에 대한 비유 말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듣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깨어 있으라'는 그 진정한 의미이다. 우선 미련한 자는 깨어있는 자가 될수 없다. 깨어있는 자는 바로 슬기있는 자만이 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그들이 슬기있단 말인가? 기름을 함께 준비하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도대체 누가 등불을 준비할 때 등만을 가져가고 그 기름을 함께 준비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등이란 기름을 태워 불을 켜는 그런 장치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간단한 원리조차 이들은 모른다. 아니, 몰라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존재하는 수많은 원리들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지혜있는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해하려 애쓰며 깨달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단지 등불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게 될 뿐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슬기이다. 그리고 이 지혜는 언젠가 저 영적세상을 우리에게 보게 해 줄 것이라고 본다.
>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원리들에 의해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고 운영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는 그것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종교라는 껍데기 안에서 그저 머물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성령의 강림을 위해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셨건만 저들은 전혀 이해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저들은 마음의 할례도, 죄사함도 알지 못한다. 심령의 가난함이 무엇인지, 온유함이 무엇인지, 마음의 청결함이 무엇인지, 심지어 진리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깨어 있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깨어있음은 미련한 자들이 아닌 슬기있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 날과 시를 모르니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시대를 읽으며 예비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영적인 세계의 움직임을 올바로 보아야 한다는 그런 말인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참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예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열처녀에 대한 비유는 '깨어 있으라.'는 교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지혜있는 자가 되어 시대를 분변하라는 그런 뜻일 것이다. '등과 기름'이라는 작은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영적인 세상의 그 이치를 알수 있겠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어찌 알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우선은 슬기있는 자가 되길 바란다. 믿음이 무엇인지 배우고 깨닫기를 바란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직접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 왜 멈추는가 말이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 아니겠는가? 묻고 또 물어야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 슬기있는 자겠는가? 그리고 왜 미련한 자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아멘!
Chapter1. 세상 끝에는...(세번째 열처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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