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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이상의 말씀 | 사울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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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83회 25-06-0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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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나무 3권 예언의 말씀
이상의 말씀
사울의 이상



"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 울은 이상중에 예수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는 둘러 비취는 빛만을 보고 그냥 엎드러져 그 소리만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재밌는 것은 같이 동행하던 자들도 어떤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바울이 경험했던 이 이상은 바울만이 보고 들은 그런 경험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향하여 커다란 우뢰소리가 나거나, 하늘에서 빛이 비취는 등 그런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게 된다. 이는 예수께서 운명하시게 됨을 인하여서이다.
 이런 현상들은 무엇일까?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맞긴 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있는 사울은 둘러 비취는 빛도 보고 소리도 분명하게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하던 이들은 부분적으로 그 소리만을 듣게 된다. 잘보면 이는 매우 특이한 그런 현상임을 알수 있다. 정보를 담은 무언가가 특정한 대상에게 쏘아져 대상의 인지를 장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이런 기술은 핸드폰이나 인터넷, 그리고 홀로그램 기술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그러나 어떻게 들으신단 말인가? 이것은 같은 질문이다.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각은 우리 안에 실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정보로 이루어진 무언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 그 정보는 어디론가 그렇게 날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무언가 그런 수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상을 본 것이라 해야한다. 그리고 이상 중에 예수를 만나고 쌍방간에 대화도 했다면 그는 실제로 예수를 만난 것이며, 또한 대화도 한 것이라 해야 한다. 어떻게? 그걸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사울은 분명 예수를 만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예수를 만난 후에 오히려 더욱 따지고 핍박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만남으로 인하여 변하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그는 크게 절망했었고 실제로 그 눈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근처 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고민했다. 자신이 그토록 핍박했던 그 예수께서 사실은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

> 도하던 중에 아니니아라 하는 자가 들어와 그에게 안수를 하게 된다. 그러자 그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아나니아라 하는 자도 사울과 매우 비슷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잘보면 매우 발달된 그런 영상매체를 통해 예수님과 소통하였음을 알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하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도라는 것은 단순히 망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신적인 소통을 하는 행위가 아닌가 말이다. 사람의 정신속에 일종의 와이파이가 탑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은연 중에 이런 기능을 계속 사용해 왔을지도 모른다. 단지 눈과 귀를 통해서만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삼의 어떤 감각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주고 받아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란 생각을 주고 받는 그런 행위라고 볼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무의미한 것이라면, 육체의 소욕을 구하는 것이라면, 무지한 자의 그저 어리석은 기도라면 어떠하겠는가? 차단당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 소통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매체가 아니다. 핸드폰이 없어서 소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로 앉아서 몇시간씩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진정한 소통을 이루겠는가? 소통이란 정보의 주체가 중요하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그 끝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진실에 도달할수 있는 것이다. 비록 작은 진실일지라도 말이다. 사울은 예수를 만나 강압적으로 설득을 당한 것이 아니다. 예수를 만남으로 인해 뒤틀려진 자신의 생각을 돌아본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진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란 소통의 중심에 있는 자신만의 인지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의 인지세계를 구축하고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계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어찌 알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인지세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정의되어져야만 소통을 시작할수 있는 것이다. 비로소 나아가 기도를 할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주께서 들으신다면 분명 응답하실 것이다. 그 응답이 좋은 것인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좋은 답만을 듣기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 바울은 이상을 통하여 예수를 만났다. 이 이상이란 무엇일까? 이상이란 분명 하나님의 소통의 방식 중 하나이다. 이런 소통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할수 있다. 꿈이나 이상, 율법과 선지자, 징조와 사시를 알게하는 해와 달과 별들, 불의의 병기나 의의 병기, 심지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범사에 주를 인정하라 하신다. 길을 가다 자빠져도, 불치병에 걸려도, 기적처럼 회복되어도, 이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인 예수를 보내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시고 말이다. 그 후에도 성령의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여정 속에서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배우게 되었으며, 그를 증거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상을 통하여, 누군가는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누군가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예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소통인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그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도 그렇게 울려퍼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멘!

Chapter4. 이상의 말씀 (사울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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