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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선지자들의 서 |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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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81회 24-05-04 07:55

본문

감람나무 3권 예언의 말씀
선지자들의 서
요나



"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

> 나는 니느웨라는 큰 성읍의 멸망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들의 악독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렇게 멸망당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그들의 교만함과 거만함으로 인하여 그렇게 멸망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니느웨도 이제 곧 저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렇게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을 들은 요나는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열심히 도망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바다 한가운데서 엄청난 폭풍을 만나 그의 탄 배가 깨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고 혼란 가운데에서 이 재앙이 과연 누구로 인한 것인지 알기 위하여 제비를 뽑자 한다. 그러자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다. 이에 사람들은 추궁하여 어찐 일인지 요나에게 묻게 되었다. 요나는 모든 경위를 솔직히 말하였고 자신을 그냥 바다에 던지라 한다. 그러면 바다가 잠잠해질 것이라며 말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그 배를 육지에 대고자 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바다는 더욱 흉용해져만 갔다. 그들은 할수 없이 그를 바다에 던지기로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듯 아주 잠잠해지게 된다.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되었다. 이는 알다시피 예수님의 마지막 표적에 관한 것이 된다. 해석하자면 큰물고기 뱃속은 땅속이며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삼일 삼야는 사흘을 말하는 것이며 죽음을 이기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이토록 도망치고 있던 것일까?

> 요나는 다시금 돌아와 사흘길이나 되는 큰성 니느웨를 고작 하루 정도만을 거닐며 외치게 된다. '사십일이 지나면 무너지리라' 하며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니느웨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게 된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였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는다. 그러더니 소문은 니느웨 왕에게까지 들렸고, 왕은 그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는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차마 그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하신다. 그런데 이때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요나가 하나님께 그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줄 알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에 그렇게 도망친 것이라 하며 매우 화를 내는 것이었다.



 

> 의 성냄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그리고 인애가 크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이에 요나가 성밖으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들의 멸망을 반드시 보겠다는 것이다. 요나의 주장은 이러하다. 자신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 예언의 말씀이 폐하여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나의 생각은 과연 옳은 것일까? 과연 요나의 물고기 죽음은 하나님의 잘못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에게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장은 자신의 행동이 매우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그 성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생명을 베풀어주려 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전혀 굽힐 생각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

> 예언의 말씀은 그 성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돌이킴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경은 수많은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예언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풀때에는 반드시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언은 그 성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말해 예언이란 결정된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예측되어지는 어떤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요나는 예언의 성취가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유부단하여 일을 망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물으신다. '네가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많은 사람들을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단 말이냐?' 그러나 요나의 대답은 바로 여기에서 끝이 나버린다. 그가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더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야만 한다. 반드시 말이다. 아멘!

Chapter3. 선지자들의 서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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