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_img6.png




Chapter 2. 요한계시록 | 일곱번째 엘리야의 심령과 모세의 지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74회 21-06-29 18:10

본문

감람나무 3권 예언의 말씀
요한계시록
일곱번째 엘리야의 심령과 모세의 지각



>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가 있다. 두 감람나무라 함은 종들의 인침에 있어 그들의 감람유가 사용됨을 말한다. 또한 두 촛대라 함은 그들의 증거를 통해 무언가를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참된 증인이 되며 감람유를 생산하는 그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신부인 두증인을 가리키는 것이며, 십사만사천이라는 종들의 인침에 있어 그 중심에 서는 자라 할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종들의 정점에 서는 자, 그가 바로 저 두증인인 것이다.
 변화산에서 예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게 된다. 모세와 엘리야는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오리라 한 그 엘리야가 바로 세례요한이라 하신다.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광야에서 물의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은 엘리야인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것이지 진짜 엘리야는 아닌 것이다.

> 그렇다면 엘리야의 심령을 가졌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다. 다시말해 그는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인 것이다. 증거하는 자가 둘이 있다. 하나는 모세요, 또 하나는 엘리야이다. 두 증인이라 함은 첫번째로 엘리야의 심령을 말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모세의 지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산에서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바로 이 두증인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두 증인은 정말로 두명의 증인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모세의 지각이라는 이 인식의 두요소를 균형있게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증인은 한 사람이 이 두가지 인식의 요소를 모두 가질 때에 나타나는 것이라 하겠다.



 

> 곱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는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이 두가지 요소에 대해 생각한다. 사자는 예수를 많이 닮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지근하다는 책망을 듣게 된다. 주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뜨거움이나 차가움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방문하면서 뜨거움과 차가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뜨거움은 긍휼이라 생각했으며, 차가움은 심판이라 생각했다. 하나는 냉철한 마음으로 율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뜨거운 마음으로 그 공감을 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성장의 끝에 이르게 된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의 사자는 영원한 숙제처럼 이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에서 갈등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로 보건대 그가 바라보는 뜨거움은 엘리야의 심령을 의미하는 것이며, 차가움은 모세의 지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이는 처음부터 그랬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단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 두증인은 일곱별의 성장이라는 그 끝에 서는 자다. 한 없이 예수를 닮아가는 그가 두증인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두증인이란 말인가? 참으로 그가 신부인 것이며 영적인 예루살렘 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열두 진주문은 십사만사천의 하나님의 인맞은 종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들 전체가 일곱교회의 사자인 일곱별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금달란트를 맡기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 일곱별이라는 직분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분명 그들 중엔 착하고 충성된 자들도 있을 것이고, 게으르고 악한 종들도 있을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도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그런 종들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삯을 바라고 종이 되었기에 그저 삯꾼처럼 나중되어 버리는 그런 종들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결국엔 거짓선지자가 되어 형제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그런 자들도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종들은 성장하고 또 성장하게 될 것이다. 엘리야의 심령을, 모세의 지각을 얻게되는 것이다. 참된 증인이란 무조건 용서에 대해 말하는 자가 아니다. 또한 무조건 심판에 대해 말하는 자도 아닌 것이다. 모세의 지각을 통하여 냉철한 판단을 하며, 엘리야의 심령을 통하여 깊은 공감을 해야만 한다. 참된 증인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진실을 꿰뚫어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두증인의 증거가 참인 것은 그의 증거가 매우 신뢰할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엘리야의 심령과 모세의 지각이라는 이 두요소는 그 균형에 중점을 둔다. 누구를 용서하며 누구를 심판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균형의 끝엔 하나님께서 계신다. 하나님의 인식, 진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시선으로 우리를 보시는지 그것을 알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진리를 아는가? 진리란 수많은 진실들의 그 끝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보게되는 그 무언가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아멘!

Chapter2. 요한계시록 (일곱번째 엘리야의 심령과 모세의 지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