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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산상수훈


율법의 완성자 (네번째 율법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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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013회 23-05-2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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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완성자 (네번째 율법의 확장)

 

 

"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 태복음 5장에 이어 6장에 들어서서는 일종의 율법의 확장에 대해 말씀하시게 된다. 그 시작은 이러하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의는 구제함이나 기도, 그리고 금식과도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를 행할 때에 주의해야만 하는 그런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로 은밀함이다. 구제나 기도를 행할 때에 매우 은밀히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그 상을 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 땅에서 소문이 나게되면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하늘에서는 받을 상급이 없게 된다고 하신다. 저 하늘에서 상급을 원한다면 이 땅에서는 그 영광을 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 그리고 이어서 두번째로는 중언부언을 하지 말라 하신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은 거짓된 신이라 할수 있다. 돌이나 나무를 깍아 그 상을 만들고 신격화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 귀신이나 사단이 있어 초월적인 그런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당연히 겉으로 보여지는 그런 외적인 의식들이 중요할수 밖에 없다. 기도의 내용보다도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을 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그런 귀신처럼 대하고 있다는 그런 뜻이 될수 있다. 때문에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을 한다면 하나님께 축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저주를 받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예 기도의 예를 들어 주신다.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 앞에 서는 자, 주기도문 참고) 


> 이어서 세번째로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하신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는 것이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하시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앞에서 언급한 구제함이나 기도, 그리고 금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눈은 몸의 등불이라 하신다. 쉽게말해 우리의 눈은 랜턴처럼 그 빛을 비춘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의 빛이 강하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볼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 빛이 어두우면 어두움 속에서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참 알수 없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믿기 바란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하시지 않는가?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것은 그 눈을 어둡게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 러므로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든지 재물을 중하게 여기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는 없다. 이해하겠는가? 돈을 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돈을 섬긴다는 그런 의미인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들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일하는 것과 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어찌 같겠는가 말이다.  


> 아무리 재물을 많이 모은다고 하더라도 그 목숨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였으나 사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이다. 목숨을 위하여 음식을 먹는 것이며, 그 몸을 위하여 의복을 입는 것이 아니겠는가? 몸의 등불을 밝혀 참된 진실을 보기 바란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돈을 주고 음식을 구한다고 해서 그 돈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고 있는 것이겠는가? 돈의 끝에는 사람들이 있고 기술들이 있으며, 그 이면에는 지혜를 주시며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늘 우리가 과연 그보다 귀하지 않은가? 돈을 주고 음식을 산다고 해서 우리의 목숨이 그 돈에 달린 것이겠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해를 비춰주시지 않고 비를 내려주시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그 돈을 주고 우리의 필요를 구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 땅에서도 말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 빛을 비춰 밝히 보길 바란다. 이 세상의 진짜 진실을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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