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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산상수훈


율법의 새계명 (그 두번째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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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631회 23-05-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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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새계명 (그 두번째 좁은 문)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 수님께서는 비판과 헤아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세가지를 명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번째 비판과 헤아림은 반드시 역지사지를 따른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단 예외사항이 있다. 개와 돼지와 같은 수준의 사람에게는 주의요망, 역효과가 발생할수 있으니 말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는 그 보상이다. 올바른 비판과 헤아림을 통해 그 섬김을 이룬다면 이러한 크나큰 보상이 따르게 된다고 하신다. 영적여정을 걷다보면 반드시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게 된다. 예를들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같은 것 말이다. 또한 반드시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는 그런 순간들도 찾아온다. 하나님께서 남기신 그런 단서들 말이다. 이 단서들을 찾지 못하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수 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그저 그 벽을 두드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로 엄청난 그런 보상이다. 알겠는가? 


> 두번째로는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하신다. 이 좁은문은 베드로와 같은 터의 역할을 하는 그런 종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어서 세번째로는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하신다. 어쩌면 이 두번째와 세번째는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좁은 문은 터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종을,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거짓선지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하는 일의 종류가 서로 완전히 다르니 이를 나눠서 설명하는 게 좋다고 본다. 


> 우선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리더를 찾으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를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문이라 하신다. 예수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길을 가려면 혼자서라도 열심히 성경을 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반드시 터의 역할을 하는 종들이 필요한 것이다. 보냄을 받은 예수님의 사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도가 없는 교회는 사실 교회가 아닌 것이다. 사도는 보냄을 받아 천국과 이 땅을 이어주는 그런 존재와도 같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주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고, 비판과 헤아림을 통해 그 섬김을 행하는 자인 것이다. 그는 교회의 터가 되어주며, 예수의 증인이 되어주며, 영적인 거듭남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수 있도록 그 안내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 이번엔 거짓선지자들이다. 하나님의 종을 판단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극히 무례한 일이 될수 있다.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하는 것은 이런 위험한 판단을 직접 하라는 그런 말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하는 말의 진위를 가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저 그들의 열매를 보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단지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무엇을 타고 다니는지, 주머니를 차는지, 재산을 모으는지, 뭐 그런 것을 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지 못된 열매를 맺는지 이를 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노골적으로 직접 그 예를 들어주시기까지 하신다. 그들은 주로 선지자 노릇을 할 것이라 하신다. 마치 점쟁이처럼 선지자처럼 말이다. 우리의 마음을 떠보려는 것인가? 아니면 꿰뚫어 보려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기도, 심지어 권능을 행하기도 할 것이라 하신다. 잘보면 저들은 그저 쇼를 하고 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말이다. 이것이 어려운가?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는게 그리도 어려운가 말이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 자! 이제 정리해보자.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라,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이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비판과 헤아림이 있다. 올바른 자세로 비판을 하라는 것이다. 형제의 눈속에 있는 그 티를 빼주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어떻게 사랑했는가에서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주와 선생으로서 너희의 발을 씻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니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해하겠는가? 새계명이 무엇인지 말이다. 


> 그러므로 올바른 비판과 헤아림을 하는 자가 그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그런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복이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천국의 제자들이 누구겠는가 말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보는 자가 아니겠는가?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바로 그들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교회의 터가 되어주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그리고 비판과 헤아림을 통해 형제의 눈속에 있는 그 티를 빼주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참된 종들인 것이다.  

 

> 하나님의 종은 어린 양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그 죄사함을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자아의 죽음과 영적인 거듭남을 이룰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고 말이다. 경계하기도 하며, 책망하기도 하며, 비판과 헤아림으로 일깨움을 주기도 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영적여정을 통해 예수의 참된 증인이 되어야만 하며, 끝끝내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곱교회의 사자인 일곱별이 하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바라셨던 그의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교회의 터가 되어주는 것,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는 것, 그리고 참된 예수의 참된 증인이 되어주는 것 말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교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율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산상수훈은 일종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 할수 있다.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은 그렇게 폐하여졌을 지라도,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는 오히려 그 율법의 요구가 완성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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